로테이션 소개팅 후기 열 개를 읽었다 — 다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로테이션 소개팅 후기 열 개를 읽었다
— 다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2~3시간에 열 명 넘게 만난다는 소개팅.
먼저 여성들이 자리에 앉아있고, 그 앞에 남성이 앉아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고 7~10분씩 대화한다.
사회자가 시간이 끝났다고 알리면 대화를 멈추고 쪽지를 건넨 뒤,
남성들이 자리를 옮겨 다음 사람과 이어서 이야기한다.
2~3시간에 열두 명. 로테이션 소개팅이다.
재밌어 보이기는 하는데...
실제로 어떤지를 모르니 신청 버튼을 못 누른다.
그래서...
다녀온 사람들 후기를 모아 읽었다.
좋았다는 쪽도 있고 다시는 안 간다는 쪽도 있는데,
이상하게 양쪽이 똑같이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우선, 이런 걸 한다
신청부터가 관문이다.
한 참가자는 첫 신청이 떨어졌다가,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프로필을 바꾼 뒤 두 번째에 통과했다.
신청서도 만만치 않다.
어떤 모임은 자기 매력 세 가지를 적어 내게 한다.
한 참가자는 그게 참가자 명단에 인적사항과 함께
꼬리표처럼 달릴 상품 태그 같았다고 적었다.
상품 태그. 참가자 본인이 고른 표현이다.
* 대부분의 로테이션 소개팅 진행 방식
| 로테이션 소개팅 구조 |
1. 주최 측이 준비한 질문지 작성
2. 직업과 사는 곳, MBTI, 취미를 물으며 대화 시작
3. 10분 마다 사회자의 자리변경 알림
4. 상대에게 쪽지를 건넨 뒤 남자들은 자리 이동
5. 한 바퀴가 다 돌면 여자들이 먼저 퇴실
6. 남자들이 뒤이어 나가는 것으로 끝
| 소개팅 이미지 |
좋았다는 쪽
한 에디터의 친구는 열다섯 명을 만나 여덟 명에게 번호를 받았고,
그중 셋에게 자기 연락처를 줬다. 지금 두 명과 연락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에디터가 직접 나간 곳은 남녀 6:6이 2:2로 짝을 지어 30분씩 대화하는 소규모였다.
끝나면 더 얘기해보고 싶은 이성 두 명을 적고,
서로 호감이 있어야만 연락처가 공유된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다른 체험기는 참가자 직업이 공무원, 의사, 마술사까지 다양해서
지인 소개로는 만나기 어려운 직군과 매칭된다는 점을 신선하게 봤다.
마술사. 친구 소개로는 평생 못 만날 사람이다.
별로였다는 쪽
한 참가자는 상대가 프로필 카드에 적힌
직장과 키를 취조하듯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대학생 모임을 주최한 사람은, 오기 전부터 상대 사진을 요구하고,
정작 와서는 소개팅 상대를 앞에 두고
핸드폰을 만지는 참가자 때문에,
진행자인 자기까지 화가 났던 기억을 꼽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다. 한 표도 못 받으면 자괴감이 들지만,
많이 받아도 자존감이 채워지지는 않더라는 것.
양쪽이 똑같이 하는 말
읽다 보면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얘기가 반복된다.
한 사람은 두 번 나가보고
왜 다들 운빨이라고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
10분 안에 대화로 매력을 어필하는 건
말주변이 아주 좋지 않으면 어렵고,
결국 외모와 첫인상과 목소리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직업은 오히려 덜 중요했다고 봤다.
댓글에는 이런 말이 달렸다.
대진운이 전부라고.
표를 몰아 받은 적도 있고 0표를 받은 적도 많다고.
다른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사실상 판단할 수 있는 건 외모와 분위기뿐이라고.
실용적인 관찰도 하나 있었다.
한 참가자는 사람들 나이가 잘 가늠이 안 되더라고 했다.
나이 많아 보였는데 자기와 동갑이었고,
또래인 줄 알았는데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나이보다 자기관리와 스타일링으로 드러나는
'실질적인 외모 나이'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적었다.
10분 안에 상대가 읽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 아니라
오늘 준비하고 나온 상태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 시간이면 달랐을까
후기를 다 읽고 나면 씁쓸한 게 남는다.
진심이나 됨됨이 같은 말은 후기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10분이 짧아서 그렇다고 하면 편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시간을 줬다면 됨됨이가 보였을까.
세 시간이면 진심이 보였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몇 년을 만난 사람도 어느 날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러니까 10분이 만든 건 새로운 기준이 아니다.
원래 앞에 있던 것을,
앞으로 당겨 보여준 것에 가깝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 판단이 슬쩍 지나갔다.
소개팅에 나가서 별로였으면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끝났다.
지금은 쪽지 몇 장으로 숫자가 남는다.
기준이 잔인해진 게 아니라,
기준이 눈에 보이게 된 거다.
| 눈에 보이는 기준, 쪽지 |
🎭 연출가의 노트
오디션을 많이 봤다. 댄서(무용수)를 뽑는 자리다.
들어와서 인사하고 서기까지 3초쯤 걸리는데,
솔직히 그 3초에서 이미 절반이 갈린다.
아직 춤도 안 췄는데.
심사위원이 여럿 앉아 있어도 대체로 비슷한 사람에게 표시가 간다.
이게 부끄러운 일인가 오래 생각했다.
그런데 무대는 관객이 보는 곳이고 관객도 3초 만에 본다.
무대에 세울 사람을 고르면서
그 3초를 안 보는 건 오히려 직무유기다.
다만 27년 동안 확실히 배운 게 하나 있다.
3초로 고른 사람이 끝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
첫날 눈에 안 들어왔는데
두 달 뒤 무대에서 제일 좋았던 사람이 매번 있었다.
반대로 첫날 제일 빛나던 사람이
연습 세 번 만에 사라진 적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오디션에서 반드시 며칠을 두고 다시 본다.
3초를 안 믿어서가 아니라,
3초가 볼 수 있는 게,
딱 거기까지라는 걸 알아서다.
열두 번의 10분이 알려주는 것도 거기까지다.
그 자리에서 못 받은 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10분이 볼 수 있는 범위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러니 갈 거면 이렇게 생각하고 가는 게 낫다.
열두 번의 심사가 아니라,
열두 번의 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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