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원 내고 줄만 서다 왔다

 

13만원 내고 줄만 서다 왔다


올해 한 야외 음악 축제에 다녀온 직장인의 하루는 이랬다.

입장 팔찌 받는 데 1시간. 음식 주문에 1시간 30분. 화장실에 30분 이상.

공간이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 숨이 턱 막혔고, 공연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주최사 SNS에도 같은 말이 쌓였다. "줄 서다가 페스티벌 끝났다."

여기서 대부분 결론을 낸다. 표를 너무 많이 팔았다고.

틀렸다. 표를 적게 팔아도 이 줄은 그대로 생긴다.


정원은 지켰다

숫자를 보자. 주최사는 이틀간 총 2만명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서를 냈고 서울시가 심의 후 승인했다. 행사장 면적은 약 1만3500㎡, 통상 하루 수용 인원은 1만1250명이다.

계산상으로는 들어간다. 그런데 현장은 터졌다.

왜 그럴까. 수용 인원이라는 숫자가 답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몇 명이 들어가나"가 아니라 "몇 시에 들어가나"다.




티켓은 총량으로 팔리고, 줄은 시간당으로 생긴다

여기가 이 문제의 전부다.

주최자가 파는 건 하루치 입장권이다. 만 장이면 만 명. 계산 끝.

그런데 관객은 하루에 걸쳐 고르게 안 온다. 첫 공연 30분 전에 몰린다. 만 명 중 육칠천 명이 같은 30분에 게이트 앞에 선다.

게이트가 처리할 수 있는 인원은 시간당 몇 명이다. 화장실도 시간당 몇 명이다. 매대도 마찬가지다. 이건 총량이 아니라 처리 속도다.

파는 단위와 터지는 단위가 다르다. 그래서 정원을 지켜도 줄이 선다.

그리고 주최자는 이걸 미리 알 방법이 없다. 표가 팔린 시점에 알 수 있는 건 몇 장이 나갔는지뿐이고, 몇 시에 올지는 아무도 안 물어봤다.


물어본 곳이 있었다

한 대형 행사가 오전권과 오후권을 나눠 팔았다. 그 행사 처음 있는 시도였다.

결과는 이랬다. 장내 혼잡도가 양호한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됐고, 그 상태가 오후 3시 이후까지 이어졌다. 총 4만여 명이 들어온 행사였다.

주최사 쪽 설명이 더 흥미롭다. 관람객의 30%를 차지하는 지방 방문객이 시간에 쫓기지 않게 되면서, 늦은 오후 프로그램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사람 수를 줄인 게 아니다. 같은 인원을 시간에 펴놓았을 뿐이다. 그랬더니 줄이 사라지고, 오후에 텅 비던 시간대가 채워졌다.

주최자 입장에서 이건 손해가 아니다. 오후 프로그램 참여가 늘었다는 건 팔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뜻이다.



나눈다고 다 되지는 않는다

물론 티켓만 쪼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같은 행사에서 인기 부스는 인파 집중을 고려해 배치했고, 통행 공간을 넉넉히 뒀고, 복층 구조를 활용해 장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이상 혼잡에 대응했다.

티켓 분할은 입구에서 하는 일이고, 배치와 모니터링은 안에서 하는 일이다. 둘이 같이 가야 한다.

올해 다른 행사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나왔다. 첫날 입장 대기가 길어지자 주최 측이 대기 등록과 입장 절차를 연계해 재정비하고, 등록 부스 인력을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지했다. 문제를 인력으로 막은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인건비가 티켓을 시간대로 나눴으면 안 들었을 돈이라는 얘기다.



🎯 기획자의 노트 — 정원은 면적이 아니라 게이트가 정한다

기획서를 쓸 때 수용 인원 칸에 뭘 적을지가 늘 문제다.

초보는 면적으로 계산한다. 1인당 몇 제곱미터를 잡고 나누면 숫자가 나온다. 소방 심의도 통과한다. 그런데 그 숫자로 운영하면 현장이 터진다.


실제 정원은 세 개의 병목이 정한다.

입구. 검표 한 명에 몇 초가 걸리는지 재고, 게이트 수를 곱하면 시간당 입장 가능 인원이 나온다. 그 숫자가 그날의 진짜 정원이다.

화장실. 이게 가장 자주 무시된다. 1시간 30분 줄을 선 음식보다 30분 줄을 선 화장실이 만족도를 더 깎는다. 참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퇴장. 아무도 기획서에 안 쓰는데 사고는 여기서 난다. 입장은 몇 시간에 걸쳐 나뉘지만 퇴장은 한 번에 몰린다.


셋 중 가장 느린 것이 그날의 정원이다. 나머지를 아무리 늘려도 소용없다.

그런데 이 계산을 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 몇 명이 언제 오는지 알아야 한다. 모르면 최악을 가정해서 인력을 두 배로 붙이는 수밖에 없고, 그건 그대로 비용이다.

17편에서 팝업이 마감을 팔아 사람을 모은다고 했다. 그런데 마감을 세게 걸수록 사람이 한 시점에 몰린다. 모으는 기술과 흩는 기술은 다르다. 판을 짜는 사람은 둘 다 있어야 한다.


표를 몇 장 파느냐보다, 몇 시에 오게 하느냐가 그날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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