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인플루언서는 팔로워가 0명이었다 — 18세기 파리 살롱
원조 인플루언서는 팔로워가 0명이었다 — 18세기 파리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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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파리 살롱 |
"팔로워 몇십만이라던데, 그게 진짜 영향력이야?"
인플루언서 이야기가 나오면 늘 같은 논쟁이 붙는다.
이 문제는 SNS가 생기기 300년 전에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팔로워가 아예 없던 시절, 파리에는 왕도 못 가진 힘을 쥔 사람들이 있었다.
가진 건 하나, 그 막강한 힘은 바로, 초대장.
거실 하나가 무기가 된 이유
17~18세기 파리. 귀족과 지식인들이 어느 집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유행한다.
나중에 이걸 살롱이라 부르게 된다.
시작은 17세기 초, 한 귀족 부인이 자기 집 방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이 모임을 주재한 건 거의 다 여성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성은 관직도, 대학도, 공적인 발언권도 가질 수 없었다.
가질 수 있는 건 자기 집 거실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그걸 무기로 만들었다.
초대장의 진짜 기능은 부르는 게 아니다
살롱 주인이 하는 일은 단순해 보인다. 사람을 부르고, 차를 내고, 대화를 굴린다.
그런데 초대장에는 뒷면이 있다.
누구를 부를지 정한다는 건, 누구를 안 부를지 정한다는 뜻이다.
신분이 높다고 자동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재미없으면 다음에 안 부른다.
반대로 돈도 배경도 없는 무명 작가라도 재능이 보이면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이 거절이 쌓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 거실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증명서가 된 것이다.
거기 있었다는 건 그 주인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뜻이니까.
후원자가 붙고, 출판업자가 찾아오고, 이름이 돌기 시작한다.
즉, 살롱 주인은 후원자가 아니라 심사위원이었다.
그리고 심사 결과는 초대장 한 장으로 통보됐다.
요일을 쪼갠 여자
18세기 중반, 이 게임을 가장 잘한 사람이 마담 조프랭이었다.
그는 자기 살롱을 요일로 쪼갰다.
월요일은 화가와 예술가, 수요일은 작가와 철학자. 절대 섞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섞으면 대화가 얕아지기 때문이다.
화가와 철학자를 한 자리에 몰아넣으면 서로 아는 척만 하다 끝난다.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깊게 못 한다.
다들 상대가 못 알아들을까 봐 수위를 낮추기 때문이다.
같은 판에 있는 사람끼리 모아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그가 판 걸 잘게 쪼갠 이유는 사람을 덜 부르려는 게 아니라,
그 방에서 나올 대화의 밀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원리가 지금 계정 운영에 그대로 적용된다.
아무거나 올리는 계정이 안 되는 이유
요즘 인플루언서 이야기에서 늘 나오는 조언이 있다.
계정 색깔을 정해라, 전문 분야를 좁혀라, 말하는 바가 명확해야 한다.
맞는 말인데, 이유를 잘못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리즘 때문이라고 하거나 브랜딩이라는 말로 뭉뚱그린다.
진짜 이유는 요일제와 같다.
계정 컨셉은 누구를 부를지 정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거를지 정하는 장치다.
오늘은 운동, 내일은 맛집, 모레는 재테크를 올리는 계정을 생각해보자.
팔로워는 늘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아무 공통점이 없다.
운동 보러 온 사람이 재테크 글에서 나가고, 재테크 보러 온 사람이 맛집 글에서 나간다.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남남이면 그건 모임이 아니라 대기실이다.
반대로 한 가지만 파는 계정은 팔로워가 적어도 그 안이 균질하다.
그래서 댓글이 붙고, 대화가 이어지고,
무엇보다 그 계정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된다.
무명 작가가 조프랭의 수요일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증명서였던 것처럼.
협업 제안이 팔로워 순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브랜드가 사는 건 숫자가 아니라 그 방에 누가 모여 있는지다.
그 거실에서 백과전서가 나왔다
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 중 가장 유명한 게 백과전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데 모으겠다는, 당시로선 무모한 기획이었다.
수십 년이 걸렸고, 검열로 여러 번 중단됐고, 돈이 계속 모자랐다.
그때 살롱이 움직였다.
필자를 연결하고, 후원자를 붙이고, 위험할 때 힘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마담 조프랭은 직접 돈도 댔다.
살롱이 없었으면 백과전서가 아예 안 나왔을 거라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그 거실들이 없었다면 훨씬 늦거나 훨씬 작아졌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같은 분야 사람들을 한 방에 모아놨더니, 아무도 혼자서는 못 할 일이 나온 것이다.
🇰🇷 명동 다방에도 마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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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 다방 |
한국에도 비슷한 자리가 있었다.
1950~70년대 명동. 다방 몇 곳이 문인과 화가, 음악가들의 아지트였다.
원고료 대신 외상을 달아주고, 누가 누구를 찾는지 전달해주고,
신인을 선배에게 소개해주는 일이 거기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관리하던 사람을 마담이라고 불렀다.
프랑스 살롱의 마담과 한국 다방의 마담. 우연히 같은 단어일 뿐 계보는 없다.
그런데 하는 일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재밌는 건 여기도 섞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인들이 가는 집과 화가들이 가는 집이 달랐다.
아무도 정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그렇게 갈렸다.
🎭 연출가의 노트
행사를 맡을 때 클라이언트가 제일 늦게 주는 자료가 참석자 명단이다.
그런데 그게 제일 먼저 봐야 할 자료다.
같은 예산, 같은 무대, 같은 순서인데도
누가 앉아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행사가 된다.
그래서 스타트업 데모데이나 전시 오프닝을 준비할 때
나는 좌석 배치도부터 그린다.
그리고 그 도면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는 건
누구를 부를까가 아니라 누구를 이번엔 빼야 하나다.
처음에 명단이 늘어나면 클라이언트는 좋아한다.
사람이 많으면 대개 성공한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관심사가 제각각인 200명보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40명이 훨씬 세다.
앞의 경우엔 다들 명함만 받고 집에 가고, 뒤의 경우엔 뒤풀이가 새벽까지 간다.
행사가 끝난 뒤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는 순간도 거기서 갈린다.
클라이언트는 관객 수도 세겠지만,
그가 이렇게 말하면 그 행사는 성공이다.
"오늘 누구 만났어요."
파리의 그 거실 주인들이 한 일이 정확히 이거다.
그들은 글을 쓰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누구를 그 방에 안 들일지를 정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방에서 백과전서가 나왔다.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술게임 편]의 차례를 이야기했다.
일곱 번째를 더한다. 명단.
앞의 것들이 판을 어떻게 굴릴 것인가였다면,
명단은 애초에 누구를 들일 것인가의 문제다.
이건 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끝나 있다.
그래서 팔로워 10만이 서로 아무 관계도 없다면
그건 명단이 아니라 숫자다.
파리의 그 여자들은 팔로워가 0명이었다.
대신 자기 거실 문 앞에 서서, 오늘은 누구를 돌려보낼지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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