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DJ는 사기꾼이었다? — DJ 유래와 디스크자키 뜻


DJ라는 말은 사기극에서 태어났다

— DJ 유래와 디스크자키 뜻


1930년대 라디오 방송 부스와 음반

"DJ? 그냥 노래 트는 거 아니야?"

한 번쯤 들어봤거나, 한 번쯤 해봤을 말이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출연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댓글창에 꼭 등장한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그냥 노래 트는 일로 어떻게 돈을 받게 됐을까?


* 먼저 짚을 것 — 라디오로 음반을 튼 최초는 '레이 뉴비'

  1909년 캘리포니아에서 열여섯 살짜리 학생이 소형 송신기로 음반을 정기적으로 틀고 있었다. 
  이름은 레이 뉴비. 1906년에 클래식 곡을 방송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영국에서는 1927년에 음반만 트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1935년, 스튜디오에 밴드는 없었다

당시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려면 연주자를 부르는 게 기본이었다. 

스튜디오에 밴드를 세워놓고 생방송으로 연주시킨다. 

음반을 그냥 트는 건 성의 없는 짓 취급을 받았다.


여기서 마틴 블록이라는 진행자가 일을 벌인다.

그는 최고급 무도회장에서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것처럼 방송을 꾸몄다. 

멘트를 하고, 분위기를 묘사하고, 곡을 소개했다.

그런데 밴드가 없었다. 전부 음반이었다.


청취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무도회장을 상상하며 들었다. 

프로그램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이 사람을 두고 한 칼럼니스트가 만들어낸 말이 

"디스크자키(disc jockey)"이다. 음반(disc)을 모는 사람(jockey).


* 여기서 한 가지 더. 이 컨셉조차 그의 발명이 아니었다. 
  서부에서 다른 진행자가 하던 형식을 제목까지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최초도 아니었고 아이디어도 남의 것이었는데, 이름은 그에게 붙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중의 사기극이다.



파리의 지하실에서 벌어진 일


한편 유럽에서는 다른 일이 터지고 있었다.

2차대전 중 파리에서는 일부 음악의 연주가 금지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하실에 모여 음반을 틀고 몰래 춤을 췄다. 

연주자가 없는 춤판. 이게 사실상 클럽의 원형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 방식은 정식 업소가 된다. 

밴드 없이 음반만 트는 가게. 그런데 여기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곡과 곡 사이에 침묵이 생긴다는 것.


턴테이블이 한 대뿐이니 판을 갈아야 한다. 

판을 갈면 소리가 끊긴다. 소리가 끊기면 춤추던 사람들이 멈춘다. 

멈추면 자리로 돌아가고, 자리로 돌아가면 그날 밤은 거기서 끝난다.


이 문제를 푼 건 1950년대 파리의 한 여성 클럽 주인이었다. 

그는 턴테이블을 두 대 놓았다. 한쪽이 끝나기 전에 다른 쪽을 올리면 침묵이 사라진다.

지금 보면 당연한데 그때는 아무도 안 했다. 그리고 이 발상이 이 직업의 실체를 바꿔놓는다.


곡을 고르는 사람에서,

시간을 이어 붙이는 사람으로.

나란히 놓인 두 대의 턴테이블

1960년대 말 뉴욕에서는 한 발 더 나간다. 

앞 곡의 박자에 뒷 곡의 박자를 정확히 맞춰 붙이는 기술이 나온 것이다. 

끊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두 곡이 하나처럼 들리게 됐다.


그리고 브롱크스에서 규칙이 깨진다

1973년 뉴욕 브롱크스. 한 파티에서 쿨 허크라는 DJ가 이상한 짓을 한다.

그는 사람들이 언제 제일 신나게 노는지 관찰했다. 

노래 전체가 아니었다. 보컬이 빠지고 드럼만 남는 구간, 딱 몇 초. 거기서 다들 미쳐 날뛰었다.


그래서 그는 같은 음반을 두 장 준비했다. 

한 장에서 그 구간이 끝날 때쯤 다른 장의 같은 구간을 올린다. 

그 몇 초를 무한히 늘린 것이다.

이게 힙합의 출발점이다. 

늘어난 그 구간 위에서 사람들이 춤을 췄고,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 직업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남의 음악을 틀던 사람이, 

음악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됐다.

같은 음반 두 장을 이어 붙이는 브레이크비트 개념


그리고

DJ가 다 같은 DJ는 아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고 가자.

지금까지 이야기가 하나의 직선처럼 보였다면 그건 정확하지 않다. 

라디오 DJ, 클럽 DJ, 힙합 DJ는 서로 다른 직업이다.


- 라디오 DJ는 말하는 사람이다. 

  곡 사이에 멘트를 넣고, 사연을 읽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음악은 그 진행의 재료에 가깝다.


-  클럽 DJ는 정반대다. 말을 거의 안 한다. 

   대신 사람들이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게 일이다.


-  힙합 DJ는 또 다르다. 판 자체를 악기로 쓴다. 

  긁고, 반복하고, 새 리듬을 만든다. 

  여기서는 남의 곡이 재료가 되고 결과물은 새 음악이 된다.


'디제이' 같은 세 글자를 쓰지만 계보도 다르고 필요한 기술도 다르다. 

그런데도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게 딱 하나 있다. 뒤에서 이야기할 그것이다.



🇰🇷 한국에는 유리 부스가 있었다


한국은 이 흐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았다.

1970년대 음악다방. 한쪽 구석에 유리로 막힌 작은 부스가 있었고 

그 안에 DJ가 앉아 있었다. 

손님들은 종이에 신청곡과 사연을 적어 부스로 밀어 넣었다.


DJ는 그 쪽지를 읽어주고, 멘트를 얹고, 곡을 걸었다. 

이름 없는 손님의 이야기가 그 공간 전체에 방송됐다.


그러니까 한국의 DJ는 처음부터 말하는 쪽이었다. 

서양이 침묵을 없애는 방향으로 갔다면, 

한국은 침묵을 사연으로 채우는 방향으로 갔다.

물론 둘 사이에 이어진 계보는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온 답이다.


재밌는 건 지금이다. 요즘 클럽 DJ는 말을 거의 안 하고, 

대신 라디오와 유튜브에 말하는 DJ가 남았다. 

한 이름이 둘로 갈라져서 양쪽 다 살아남았다.



🎭 연출가의 노트


관객은 장면에서 안 나간다. 전환에서 나간다.

무대 연출에서 제일 무서운 순간은 좋은 장면이 아니라 그다음이다. 

조명이 꺼지고, 세트가 바뀌고, 

다음 장면이 시작되기까지의 몇 초. 그 몇 초에 집중이 툭 끊긴다. 

한 번 끊기면 다시 올리는 데 몇 배가 든다.


그래서 큐시트에서 가장 공들이는 칸은 장면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다.

기업 행사나 시상식도 똑같다. 발표자가 내려가고 다음 순서가 올라오는 그 틈. 

아무 소리도 안 나는 15초가 행사 전체 분위기를 죽인다. 


그래서 브릿지 음악을 깔고, 영상을 물리고, MC를 세운다. 

내용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틈을 안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파리의 그 클럽 주인이 턴테이블 두 대를 놓은 이유가 정확히 이거다. 


음악을 하나 더 튼 게 아니라 틈을 없앴다.

곡과 곡 사이의 침묵을 없애는 구조 도해 

브롱크스의 그 DJ는 반대로 했다. 

제일 좋은 몇 초를 찾아내 그것만 무한히 늘렸다. 


연출로 치면 클라이맥스만 계속 반복하는 짓인데 

정상적인 공연에서는 절대 못 한다. 

그런데 춤추는 자리에서는 그게 정답이었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목적은 같다. 


관객이 빠져나갈 틈을 안 만드는 것. 


앞에서 라디오, 클럽, 힙합 DJ가 서로 다른 직업이라고 했는데, 

그 셋을 묶는 게 이거다. 

말로 채우든, 이어 붙이든, 늘리든 셋 다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클럽이 어두운 이유]에서 조도를, 

[회식 상석]에서 시선을, [박수부대 클라크]에서 소리를, 

[심포지엄 편]에서 농도를 이야기했다.


여기에 다섯 번째를 더한다. 이음매.


앞의 넷이 무엇을 놓을 것인가였다면, 

이음매는 그 사이를 어떻게 지울 것인가의 문제다.

잘하는 DJ의 부스를 보면 손이 쉬는 시간이 없다. 

그런데 객석에서는 아무도 그가 뭘 하는지 모른다. 

티가 안 나는 게 그 일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라이브인 척 음반을 틀던 사기극에서 시작해서, 

결국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로 끝났다. 

결론은 이거다.


DJ는 노래를 트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 사이를 없애는 사람이다






이 글은 최초 발행 후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수정했습니다. 

마틴 블록은 라디오에서 음반을 튼 최초의 인물이 아니라

'디스크자키'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인물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13만원 내고 줄만 서다 왔다

부킹 뜻? 그리고 '예약'이 밤의 언어가 되기까지..

로테이션 소개팅 후기 열 개를 읽었다 — 다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