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심포지엄, 원래 뜻은 "다 같이 술 마시기라고?"
"이번 행사 이름 뭘로 하죠."
"워크숍은 놀러 가는 느낌인데."
"그럼 심포지엄으로 가시죠. 있어 보이잖아요."
이 회의, 다들 한 번쯤 앉아 있어 봤을 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방금 붙인 그 이름이 **"다 같이 모여 술 마시기"**라는 뜻이라는 걸.
농담이 아니다. 사전 그대로다.
심포지엄, 세미나, 워크숍 뭐가 다른가?
기획서를 써야 해서 들어왔다면 이것부터. 기준은 하나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느냐.
- 세미나는 한 명이 가르치고 나머지가 듣는다.
- 워크숍은 듣지 않고 직접 만든다. 실습과 결과물이 없으면 그냥 세미나다.
- 심포지엄은 여러 명이 각자 발표하고, 서로 반박하고, 청중이 끼어든다.
여기서 실무 팁 하나.
발표자가 한 명인데 심포지엄이라고 부르면 틀린 이름이다.
이 단어는 원래 여러 목소리가 부딪히는 자리를 뜻한다.
왜 그런 뜻이 됐는지는 어원을 보면 바로 이해된다.
함께(syn) + 마시다(posis)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이 단어는 정확히 술자리를 가리켰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진짜로 마셨다. 마시면서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했고,
다음 사람이 앞사람 말을 받아쳤다.
플라톤이 쓴 책 제목이 『향연』인 것도 그래서다.
사랑이 뭐냐를 놓고 참석자들이 한 명씩 자기 생각을 말하고,
뒷사람이 그걸 반박하는 구성이다.
발표자 여럿, 의견 충돌, 상호 토론.
지금 심포지엄의 정의와 똑같다.
그러니까 학회가 술자리 단어를 잘못 빌려 쓴 게 아니다.
진행 방식을 통째로 가져간 것이다. 술만 빼고.
그리고, 그들은 앉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이 술자리에는 전용 방이 있었다. 그 방 구조가 재밌다.
침상을 벽을 따라 빙 둘러 놓는다. 보통 일고여덟 개.
참석자는 왼팔로 몸을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서 마셨다.
문도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가운데 두면 침상 하나 놓을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방 하나 지으면서 몇 명이 서로 얼굴을 볼지부터 계산했다는 뜻이다.
결과는 명확하다. 모두가 모두를 본다.
이제 우리 회의실을 떠올려 보자. 앞에 스크린이 있고, 발표자가 서 있고,
나머지는 전부 같은 방향을 본다. 모두가 한 사람만 본다. 옆 사람 표정이 안 보인다.
심포지엄이라 이름 붙였는데
실제로는 세미나가 되는 이유의 절반이 여기 있다.
또한, 그날 밤 술의 농도를 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심포시아르코스. 직역하면 '향연의 지배자'다.
제비뽑기로 뽑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합의로 정하기도 했다.
이 사람의 일은 딱 하나였다. 술을 얼마나 진하게 탈지 정하는 것.
그리스인은 포도주를 원액으로 안 마셨다.
큰 항아리(크라테르)에 물을 섞어 묽게 만든 다음 나눠 마셨다.
원액을 그냥 들이켜는 건 야만인이나 하는 짓으로 여겼다.
비율은 보통 술 1에 물 3. 진하게 갈 때는 1대 2.
"오늘은 세 대 하나로 갑시다. 내일 다들 일이 있으니."
숫자 하나로 그날 밤이 어디까지 갈지가 정해졌다.
『향연』도 "오늘은 취하지 말자"는 합의로 시작한다.
술의 농도가 대화의 밀도를 정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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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3 — 두 개의 평면도 대조 도해, 어두운 배경에 얇은 흰 선. 왼쪽은 벽을 따라 둘러선 향연 방, 오른쪽은 스크린을 향해 한 방향으로 늘어선 회의실 책상, 시선 방향 화살표] |
🇰🇷 조선에는 사람 대신 잔이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그리스 얘기 아닌가" 싶었다면, 지금부터가 가깝다.
조선에도 술자리 규칙이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누가 어디 앉고 잔을 몇 번 주고받는지가 다 정해져 있었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지적하는 감독 역할까지 따로 뒀다.
그리스와 방향은 정반대다.
그리스는 얼마나 풀지를 정했고, 조선은 얼마나 조일지를 봤다.
물론 둘 사이에 이어진 실은 없다. 그냥 같은 고민을 각자 푼 것뿐이다.
그런데 조선에는 더 재밌는 물건이 있다.
계영배.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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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4 — 계영배 단면 도해: 잔 안쪽에 숨은 관 구조, 7할 지점 표시, 어두운 배경에 얇은 선] |
7할쯤 채우면 멀쩡한데,
그 이상 부으면 밑으로 술이 전부 새어나간다.
빨대와 같은 원리를 잔 안에 숨겨놓은 것이다.
조선 후기 어느 도공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기록마다 내용이 달라서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발상이다. 절제를 사람한테 안 맡기고 물건에 심어버렸다.
그리스는 사람을 뽑아 맡겼고, 조선은 잔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공연판에는 둘 다 없다.
농도를 정하는 사람도, 알아서 새는 잔도 없이 3차까지 간다. 술도 않마시고도 간다.
🎭 연출가의 노트
워크숍 첫 세션이 조용한 건 참가자 탓이 아니다. 설계 탓이다.
공연에서 제일 어려운 건 관객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다.
언제 내려놓을지를 정하는 것이다.
1막 내내 전력으로 달리면 2막이 안 산다.
그래서 큐시트를 짤 때 텐션을 곡선으로 그린다.
어디서 올리고, 어디서 일부러 비우고, 어디서 다시 칠지.
초보는 좋은 장면을 다 넣으려 하고, 숙련된 연출은 뺄 곳을 먼저 정한다.
그리스의 그 사람이 한 일이 정확히 이거다.
물을 얼마나 탈지 정한 건 술을 고른 게 아니라 곡선을 그린 것이다.
회사 행사 기획서엔 이 항목이 없다. 시간표는 있는데 곡선이 없다.
09:00 개회, 09:30 발표1, 10:30 발표2. 이건 순서지 설계가 아니다.
어디서 힘을 뺄지 아무도 안 정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온도로 앉아 있다가 뒤풀이에서 갑자기 폭발한다.
배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한 사람만 보는 방에서는 토론이 안 나온다.
서로 얼굴이 보여야 말이 붙는다. 책상을 ㄷ자로 돌려놓기만 해도 발언 수가 달라진다.
무대에서 배우를 등지게 세우면 대사가 죽는 것과 같다.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클럽이 어두운 이유]에서 조도를,
[회식 상석]에서 시선을,
[박수부대 클라크]에서 소리를 이야기했다.
여기에 네 번째를 더한다. 농도.
앞의 셋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의 문제라면, 농도는 시간을 어떻게 나눌지의 문제다.
공간은 한 번 세우면 그대로 있지만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래서 누군가 계속 손을 대고 있어야 한다.
2,600년 전엔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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