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에 나오는 사람은 왜? 영수 아니면 영숙일까?
나는 솔로에 나오는 사람은 왜? 영수 아니면 영숙일까?
한 연애 프로그램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출연자에게 정형화된 가명을 준다. 남자는 영수, 영호, 영식, 영철, 광수, 상철. 여자는 영숙, 정숙, 순자, 영자, 옥순, 현숙, 정희.
기수가 바뀌어도 이름은 그대로다. 사람만 갈린다.
이게 이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특징이 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익명 처리가 목적이면 A, B, C로도 충분하다.
답부터 말한다. 가명은 출연자를 가리는 장치가 아니라, 시청자가 마음 놓고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다.
이름을 지우면 세로로 쌓인다
같은 이름이 매 기수 반복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역대 영숙들이 한 줄로 늘어선다.
시청자는 이번 영숙을 보면서 지난 영숙을 떠올린다. 비교가 자동으로 된다. 이름이 다 달랐으면 이렇게 안 된다.
즉 가명은 익명 처리가 아니다. 배역이다.
연극에서 햄릿은 배우가 바뀌어도 햄릿이다. 관객은 이번 햄릿이 저번 햄릿보다 어떤지를 본다. 같은 구조가 여기서 돌아간다.
출연자는 자기 이름을 반납하고 그 자리에 배역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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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음껏 품평하게 된다
한 기사에 인용된 시청자 반응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를 정확히 짚는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러 왔는데 어느새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이 말이 왜 나올까. 본명이면 이렇게 못 본다.
실명이 붙어 있으면 시청자는 자기가 지금 실존 인물을 평가하고 있다는 걸 계속 의식한다. 이름을 지우면 그 의식이 흐려진다. 캐릭터를 품평하는 기분이 된다.
캐릭터는 마음껏 편들고 마음껏 욕해도 되는 대상이다. 사람은 아니다.
가명 두 글자가 그 선을 옮긴다.
숫자로도 보인다. 최근 한 기수는 초반에 3%대 시청률을 유지하다가, 중반 이후 여론의 관심이 몰리면서 한 주 만에 1%포인트가 올랐다. 마지막 방송분은 5%를 넘겼고, 해당 커뮤니티 갤러리도 순위 1위를 되찾았다.
연애가 화제를 만든 게 아니다. 사람 구경이 화제를 만들었다.
출연자 쪽에서 보면 다르다
같은 장치가 반대편에도 걸린다.
일주일 합숙에 들어가면서 자기 이름을 두고 온다. 그 안에서 나는 영수다. 회사에서의 나, 친구들이 아는 나와 분리된 이름이다.
이름이 없으면 평소에 안 하던 걸 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 며칠 만에 마음을 표현하고, 카메라 앞에서 거절당하고, 그걸 또 다음 날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 본명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굴러간다. 가명은 출연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시청자에게는 볼 권한을 준다. 같은 장치가 양쪽에서 다르게 작동한다.
문제는 방송이 끝난 뒤다. 가명은 방송 안에서만 유효하고, 밖에서는 사람이 그대로 남는다.
🎯 기획자의 노트 — 이름표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그날을 정한다
행사에서 제일 사소해 보이고 제일 중요한 물건이 이름표다.
기업 워크숍을 할 때 이름표에 직급을 넣을지 말지로 회의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날 대화의 성격이 여기서 결정된다.
직급을 넣으면 안전하다. 누가 윗사람인지 다 보이니 실수할 일이 없다. 대신 아무 말도 안 나온다. 부장 앞에서 사원이 반대 의견을 낼 리 없다.
직급을 빼면 말이 나온다. 그런데 다른 게 같이 따라온다. 서로를 직함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고, 그러면 호오가 생긴다. 좋고 싫음이 생긴다.
이름을 지우는 건 보호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방 장치다. 가려주려고 지우는 게 아니라, 지워야 움직이니까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가가 있다. 이름을 지운 사람은 다루기 쉬워진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인상만 남고, 인상은 품평의 대상이 된다. 워크숍에서 직급을 뺐더니 며칠 뒤 누가 어땠다는 뒷말이 도는 걸 여러 번 봤다.
15편에서 혼술바가 '혼술'이라는 간판으로 손님에게 퇴로를 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17편에서는 팝업이 마감으로 사람을 민다고 했다. 이름표는 세 번째 방식이다. 누구인지를 지워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
셋 다 사람을 움직이지만, 대가가 다르다. 이름을 지우는 방식이 제일 싸게 먹히고, 제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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